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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5명문대 대학원생, 자퇴 후 노점에서 으깬 감자를 팔아 하루 700위안(약14만원) 벌어: 원하는 삶을 살다

나바오 2025. 3. 21. 16:10

출처 : 封面新闻2025-03-20 15:55

수요일 오후 다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쓰촨대학교 화시(华西) 캠퍼스 동구 북문 근처 노점 행렬 속에서 한 젊은이의 노점이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간판도, 광고도 없는 이 노점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줄은 보도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며 마치 S자를 이루었다. 인파가 몰리는 가운데 손님들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동행에게 이 ‘사장님’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기 줄은 더욱 길어져, 줄어들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노점 앞을 살펴보면, 간이 푸드카트 왼쪽에는 어성초(鱼腥草, ‘절근’이라고도 불림), 고수, 고추장, 절임 무 등 각종 양념 재료가 깔끔하게 놓여 있고, 오른쪽 스테인리스 보온통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으깬 감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두 명의 동업자와 함께 분주히 움직이며 새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었다. 눈앞의 다소 풋풋해 보이는 이 ‘사장님’을 보며, 1년 전만 해도 복단대(复旦大学) 공중보건학과 대학원생이었던 그가 지금은 자신이 바라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워 보였다.

페이위(费宇)의 노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첫 노점 도전
첫날부터 ‘50근(25kg)의 감자’가 준 혹독한 수업 친구들도 총출동해 힘 보태

시간을 3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 날은 페이위가 처음으로 노점을 연 날이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 그는 SNS를 통해 미리 예고했다. 동기들과 친구들에게 곧 노점을 열 거라고 알렸고, 모두가 열띤 응원을 보냈지만, 정작 페이위 마음 한구석은 불안했다. 모든 게 희망과 미지의 영역에 놓여 있었고, 긴장감과 기대감이 뒤섞여 복잡한 심정이 이어졌다.

오후 1시, 아래층에서 삼륜차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50근이 훌쩍 넘는, 노란빛 감자 덩어리들이 마대자루에 잔뜩 실려 있었다. 페이위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무게중심을 단단히 잡은 뒤, 자루 양끝을 꽉 쥐고 온 힘을 다해 계단을 올랐다. 무거운 감자자루를 어두컴컴하고 비좁은 계단을 따라 3층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동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집 안으로 감자를 들여놓자마자 그는 정신없이 조리 과정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쳤지만, 곧 현실의 벽이 찾아왔다.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인 50근 넘는 감자를 한꺼번에 찌기엔 집에 있는 냄비가 턱없이 작았던 것이다. 결국 세 번에 나눠 찌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도마 위에서는 송송 썰어야 할 파, 고수, 어성초(折耳根, 일명 ‘절근’), 그리고 새콤한 절임 무가 페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칼을 잡고 재빨리 썰어내자, 파는 금세 작은 초록 조각들로 잘려 나갔고, 고수 특유의 향이 퍼져 나갔다. 어성초 특유의 향도 공기 중에 가득 찼다. 절임 무는 균일한 크기의 깍둑 모양으로 잘려, 투명하게 반짝거렸다. 한편 감자가 부드럽게 쪄지자, 페이위는 얼른 나무 주걱으로 감자를 으깨고 믹서기에 갈아 보온통에 담았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었다. 장사를 시작하기까지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해야 할 일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수습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페이위는 마치 길 잃은 파리처럼 방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다 문득 휴대폰을 움켜쥐고 동창 모임 단체 채팅방에 도움을 청했다.
“얘들아, 나 망하게 생겼어! 제발 도와줘!”

페이위가 노점에서 으깬 감자를 만드는 모습

메시지를 올리자마자, 마치 출동 신호가 울린 듯했다. 잠시 후, 친구 몇 명이 공유 자전거를 타고 쌩 하고 달려왔고,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말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손을 돕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양념과 다진 고기를 볶는 일을 맡아 매운 연기에 기침을 연방 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손을 움직였다. 또 다른 사람은 재료를 빠른 속도로 다듬느라 칼이 도마 위에서 쉴 새 없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서로 엉키고 부딪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주방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마치 현실판 ‘오버쿡드(Overcooked)’ 게임을 연상케 했다.
한바탕 정신없이 뛰어다닌 뒤, 몇 사람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음식 카트를 밀고 노점으로 향하면서, 이 예측 불가능한 장사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첫날 저를 응원하러 와준 분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제 글을 보고 일부러 찾아온 동기도 많았고요. 장사를 시작하고 한 시간 남짓 만에 모든 으깬 감자가 완판됐고, 매출도 700위안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첫날 노점을 열었던 그날을 떠올리는 페이위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다.

페이위가 노점에서 으깬 감자를 만드는 모습

 

내면을 마주하다
세상의 시선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1년 전만 해도 페이위는 푸단대학교(复旦大学) 공중보건학과 대학원생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의 앞날이 탄탄대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24년 2월 어느 날, 페이위는 자신의 인생에 급제동을 걸었다. 대학원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집에서 지내며 취업을 준비하던 1년 동안, 페이위는 끊임없이 미래를 고민하며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가”라고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던 중 노점을 열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예전에 공명등(孔明灯)과 수소 풍선을 팔던 시절을 떠올렸는데, 비록 단순한 일이었지만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대학교 2학년 시절에는 전화카드 판매에 뛰어들어, 뛰어난 소통 능력과 영업 전략을 바탕으로 판매왕 타이틀을 따낸 적도 있다. 이렇듯 과거의 경험 하나하나가 퍼즐 조각처럼 이어지며, 그에게는 자신의 직업 적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 “나는 판매 분야에서 더 활약할 수 있구나.”

하지만 노점 행보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그동안 공부도 많이 했고 애써왔는데, 이제 와서 노점을 하겠다는 게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셨어요.”

물론 더 큰 압박은 세간의 시선이었다.
“아마 부모님은 친척이나 지인들 앞에서 좀 창피하다고 느끼셨을 거예요.”
부모님은 말로는 반대했지만, 페이위의 강한 의지를 보고 ‘그렇다면 직접 해보게 하자’는 마음을 품게 됐다.

“보세요, 결국 제 선택도 꽤 괜찮았잖아요.” 페이위는 3월 10일 정식으로 노점을 시작한 이래, SNS에서 그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이미 팬 카톡방(혹은 단체 채팅방)을 두 개나 만들었는데, 그중 한 곳은 500명 정원을 꽉 채웠고, 다른 한 곳도 회원 수가 빠르게 늘어 현재 400명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페이위의 말에 따르면,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동문들이다. 이 열정적인 ‘팬’들은 매일 그가 당일 장사를 나오는지, 또 나온다면 어디에서 노점을 여는지 가장 궁금해한다. 다들 노점 앞에서 인사를 건네고, 응원을 보태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페이위의 노점 앞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생겼다.

물론, 페이위에게도 자신만의 ‘작은 비밀’이 있다. 그는 SNS에 자퇴와 노점 운영 경험을 공개할 때, 일부러 선생님들이 볼 수 없도록 차단했다고 고백한다. 비록 자퇴와 노점 창업이라는 두 결정을 후회하진 않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스승들의 기대를 저버린 건 아닐까 걱정되고, 옛 은사님들을 실망시킬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성과를 거두게 되면, 당당하게 이 사실을 알릴 생각이라고 한다.

페이위의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들은 자신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선뜻 움직이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모두가 페이위의 과감한 결단에 찬사를 보냈고, “내가 하지 못한 선택을 대신해줬다”고 부러워했다.

현실에서도 페이위는 직접 행동으로, 댓글과 개인 메시지로 다가오는 방황 중인 이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전한다. “반드시 용기를 내어 스스로의 내면을 마주하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물어야 해요. 방향이 분명해지면 과감히 선택하고, 대담하게 바꿔보세요. 편안한 울타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더 이상 도망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오직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전혀 다른 멋진 인생을 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