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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역의 ‘京’ 자는 왜 획이 하나 더 많을까: 서예 예술의 독특한 표현”

나바오 2025. 2. 18. 21:05

출처 : 快科技 2025年02月18日 17:17 

난징역 南京站

2월 18일 소식에 따르면, 한 네티즌이 ‘난징역(南京站)’에 쓰인 ‘京’ 자의 가로획이 하나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정말로 글자를 잘못 쓴 것인가?”라는 궁금증을 제기했다.

“京” 자가 정말로 틀린 글자일까?

중국에서 유일하게 호수를 끼고 산을 등지고 있는 기차역으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라 불리는 난징역은, 앞쪽에 셴우호(玄武湖)를 두고 뒤로는 샤오홍산(小红山)을 병풍처럼 두고 있다. 밤하늘 아래에서 반짝이는 “南京站” 세 글자는 저명한 서예가 우중치(武中奇)의 작품이다. 독특한 필치와 뛰어난 예술적 안목을 갖춘 우중치는 서예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난징의 여러 랜드마크와 기관에서도 그의 글씨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통상적으로 ‘南京’이 정형화된 모습으로 쓰였는데, 유독 “南京站”의 ‘京’ 자는 ‘입(口)’ 부분에 획이 하나 더 들어가 있어 ‘실수’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우중치의 제자 이공(一功)은 이 같은 의문에 “눈썰미 좋은 네티즌이 선생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웃어 넘겼다. 그는 “이 ‘京’ 자는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전통 서예에서는 한자 형태와 구조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서예가들은 창의적인 표현과 기법을 통해 관습을 깨고, 한자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곤 한다. 우중치가 쓴 ‘京’ 자 역시 기존의 표준형과 달라 보이지만, 서예 예술이 추구하는 운치와 미감을 잘 살리고 있다는 평이다.

예술적 허용으로 가로획이 추가된 해서체 ‘京’字

역사적 사례가 증명하는 예술성

그렇다면 ‘京’ 자에 획이 하나 더 들어간 것이 정말 ‘잘못’된 것일까? 서예 예술의 시각에서 보면 결코 ‘오자(誤字)’로 볼 수 없다. 옛 비첩(碑帖)에 등장하고, 고대 서예 작품에서 사용된 적이 있는 글자 형태는 모두 ‘틀린 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서법洞见”이라는 공중계정(公众号) 편집자가 여러 서예 자료를 찾아본 결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비석인 「장천비(张迁碑)」, 「장맹룡비(张猛龙碑)」, 「화산신묘비(华山神庙碑)」를 비롯해 왕희지(王羲之), 왕헌지(王献之), 안진경(颜真卿), 구양순(欧阳询), 조맹부(赵孟頫), 저수량(褚遂良), 황정견(黄庭坚), 채경(蔡京), 유병산(刘炳森) 등 수많은 서예 대가의 ‘京’ 자에도 ‘口’ 부분에 가로획이 추가된 형태가 다수 발견된다.

즉, ‘잘못’이라 지적하는 것은 전통적 정자체(楷书) 표기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서예 예술의 다양성과 창작성을 간과하는 태도에 가깝다. 우중치가 직접 쓴 “南京站”의 세 글자 가운데 ‘京’ 자는 섬세한 구도 설계에 따라 ‘南’ 자와 ‘站’ 자와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단정하고 묵직하면서도 유연함을 잃지 않는 특유의 기품을 갖추고 있으며, 필획의 두께와 길이 배치 등도 매우 정교하게 구성되었다. 이는 서예 예술 창작 과정에서 그의 탐구와 표현이 반영된 결과물로, 이미 난징역을 대표하는 독특한 문화적 심벌이 됐다. 또한 도시의 역사·문화적 자산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리 잡아, 난징의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는 일부가 되었다.

주변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비슷한 사례

이번 사례만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난징 남역(南京南站)의 ‘南’ 자 역시 한때 필착(筆錯)이거나 전통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심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난징 남역의 역명 글씨는 구양순이 쓴 것이 아니라, 건축 디자이너 최개(崔恺)가 예술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전통 서예에서 ‘南’ 자는 윗부분이 ‘冂’, 아랫부분이 ‘丹’ 구조지만, 난징 남역의 ‘南’ 자는 그 순서를 뒤바꿨다. 최개는 이러한 구조 변화를 통해 새로운 예술 형식을 창조했으며, 이는 전통문화에 대한 혁신적 계승 시도라는 설명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南’ 자는 사람들의 시각적 습관과 인지 체계에 오히려 잘 부합해 정보 전달과 이해에 도움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는 ‘南京南站’의 출입구 표지판에 예스러운 예체인 ‘예서(隶书)’를 사용하고 있다.

난징남역

란저우(兰州) 기차역의 ‘兰州’ 글씨도 서예가 장방언(张邦彦)의 작품인데, ‘兰’ 자의 첫째 가로획이 아래 두 가로획보다 길고, ‘州’ 자 끝에는 갈고리(钩) 모양이 달려 있어 표준 필획과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장방언 개인의 독창성만이 아니라, 안진경이 사용했던 유사한 필법과 유관하다고 한다. 이렇게 쓴 이유는 ‘兰’과 ‘州’가 시각적으로 더욱 조화를 이루게 하고, 란저우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란저우역

예술적 표현으로서의 ‘틀린 글자’

중국 서예사에서 얼핏 보면 ‘틀린 글자’처럼 보이는 예시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왕희지의 「난정서(兰亭序)」에는 20여 곳에 이르는 수정 흔적이 있지만, 지금은 ‘신품(神品)’이라 불리며 절대적 명성을 얻고 있다. 안진경의 「제질문고(祭侄文稿)」는 메마른 붓놀림과 비백(飛白)으로 인해 오히려 불후의 명작이 되었으며, 둔황(敦煌)의 유서에서도 민간 필사자들이 자주 획을 늘리거나 줄이는 모습이 발견되는데, 이는 수백 년 뒤 사람들에게 당대의 생생한 필사 문화와 서예 생태를 전해주는 ‘증거’가 되었다. 조맹부(赵孟頫)는 “용필천고불이(用笔千古不易)”라고 말했는데, 이 ‘불이(不易)’는 역대 서예가들이 글자를 해체하고 재구성해온 전통 위에서 확립된 것이기도 하다.

중국 서예문화 연구자 오양조당(欧阳兆堂)은 “송대에 활판인쇄술이 탄생한 이후, 한자는 서예 예술에서 점차 규범화된 기호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명대(明代) 『홍무정운(洪武正韵)』의 반포, 청대(清代) 무영전(武英殿)의 ‘취진본(聚珍版)’ 보급을 거치면서, 한자 형태가 점점 표준화의 ‘틀’ 안에 갇혔다는 것이다. 컴퓨터 폰트 시대에 이르러서는 구궁격(九宫格) 안의 한자가 산업 부품처럼 ‘길들여’져, 각 획이 픽셀마다 정확히 들어맞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통용규범한자표(通用规范汉字表)」가 구축한 인식 틀에서 보면, 서예 예술의 변형은 교정 대상인 ‘오류’처럼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오양조당은 여러 자료를 조사한 뒤, “사람들이 전자 기기 화면에서 방정(方正) 폰트를 자주 접하다 보니, 디지털 시대에 물결치는 정보 속에서 오히려 붓의 자유로운 흔적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다음번에 획이 하나 많거나 적은 서예 글자를 보거든, 섣불리 ‘틀렸다’고 단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틀린 글자’를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서예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잘못 쓰인 것 같은 글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해야 할까?
장쑤성서예가협회 부주석이자 난징시서예가협회 주석인 셰샤오청(谢少承)은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 서예의 역사적 변천과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갑골문과 금문에서부터 해서(楷书)에 이르기까지 각 글자체가 변형돼 온 과정을 알아야 하며, 예컨대 ‘마(马)’ 자가 전서에서 해서로 바뀌면서 형태가 크게 달라진 것처럼, 특수한 글자 형태가 생겨난 배경을 알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대적 배경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당대나 위진 시기의 서예 풍격은 당대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한대 비석에 보이는 특정 글자법 역시 같은 맥락이다.

둘째, 서예 예술의 특성을 인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운필(運筆)과 결구(結構)의 변화를 이해해야 하며, 서예가는 글자 획을 다루면서 구조적 균형을 맞추고 독특한 미감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덕(德)’ 자의 획 변형이나 ‘선(善)’ 자와의 구조 조정, 미불(米芾)의 ‘추(秋)’ 자 변형 등은 그 작가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으로, 자칫 표준이 아닌 ‘오자(誤字)’로 보일 수 있어도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적 효과에 부합한다.

셰샤오청은 또, 지식과 경험을 계속 쌓아 실제로 서예를 써보거나 다양한 작품을 관찰하며, 서예가가 글자 구성을 어떻게 의도했는지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다 보면 작가의 창의와 글자 변형의 묘미를 이해할 수 있어, 더 깊은 차원에서 서예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난징역의 ‘京’ 자는 획이 하나 더 많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서예 전통과 창작 정신을 잇는 결과물이다. 전통적으로 확립된 ‘표준 자형’과 달리 보이더라도, 역사 속 위대한 서예가들의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예술적 변화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는 곧 서예 예술의 풍부한 표현 방식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